“시대 변화에 맞춰 글을 쓰되 반드시 고전 익히고 역사 배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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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변화에 맞춰 글을 쓰되 반드시 고전 익히고 역사 배워야”
  • 한정주 역사평론가
  • 승인 2015.11.12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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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철학]④ 옛것과 새것의 변통과 통섭…법고(法古)와 온고(溫故)의 미학⑥
▲ 택당 이식의 문집 『택당선생집』.

[한정주=역사평론가] 조선 중기에 해당하는 17세기를 대표하는 4대 문장을 일컬어 ‘계택상월(谿澤象月)’이라고 한다.

이들 중 ‘택(澤)’은 택당(澤堂) 이식을 말하는데 그 역시-박지원이나 이덕무보다 앞서-‘옛것’과 ‘새로운 것’의 변통(變通)과 통섭(通燮)을 모색하면서 “시대의 변화에 맞춰 글을 쓰되 반드시 고전을 익히고 역사를 배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식이 말하는 ‘법고’와 ‘창신’의 과정을-앞서 소개했던-김정희가 옛 서예가의 서체를 배우고 익히면서 서예의 진수(眞髓)를 깨달아 터득하고 마침내 독창적인 서체를 창안했던 과정과 비교하면서 읽으면 더욱 쉽게 이해가 갈 것이다.

“과거와 현재는 풍속이나 사회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 그러므로 말과 글로 자신의 뜻을 다른 사람에게 전할 때 그 시대 상황에 알맞은 표현이 널리 사용되는 것이 당연하다. 옛사람이 지금 세상에 태어났다면 당연히 오늘의 문장을 사용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문장의 학문과 시의 학문이 다른 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마땅히 당(唐)나라와 송(宋)나라 이후의 문장을 기준으로 삼아야 하겠으나 그 근본과 원천 그리고 내력만은 거슬러 올라가 살펴보아야 한다.

『시경』과 『서경』 그리고 『맹자』의 본문 내용, 『논어』와 『중용』 그리고 『대학』의 해설과 주석 등은 가장 먼저 익숙해질 때까지 읽고 또 평생 동안 완전하게 익히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 글들은 사람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도리의 근원이므로 단 하루라도 걸러서는 안 된다.

당나라 한유의 문장은 순자와 양응의 글을 좇아 나왔으므로 수십 편을 가려 뽑아 읽어야 한다. 그 밖에 『주역』의 「계사전」과 『춘추』 3전(三傳) 중에서 『춘추좌전』 그리고 『예기』 등의 글 역시 여유가 있다면 익숙해지도록 읽어서 깨달음을 얻어야 한다.

한유의 문장은 글쓰기의 정통이라고 할 수 있으므로 무엇보다 우선 읽어야 한다. 그 문장 중에서 70〜80수(首)를 가려 뽑아 읽되 멋과 맛을 느끼게 되면 평생토록 글쓰기의 모범으로 삼아도 괜찮다.

요즈음 학문 수준으로 볼 때 익숙해지도록 읽어 그 내용을 통하거나 깊이 깨달은 사람이 드물다. 그렇지만 시를 지을 때 두보의 시에만 매달리는 것처럼 한유의 문장만을 좇아서는 안 된다.

당나라와 송나라 시대 문장의 팔대가(八大家: 당나라의 한유·유종원과 송나라의 구양수·왕안석·증공·소순·소식·소철)들이 지은 글을 가려 뽑아 기록한 사람으로는 모록문(茅鹿門)이 가장 훌륭하다.

유종원의 글은 한유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고 할 수 있으나 구양수·왕안석·증공의 글은 오직 한유에게서 나온 것이다. 이른바 삼소(三蘇), 즉 소순·소식·소철 또한 『장자(莊子)』와 『국어(國語)』를 공부했다고 할지라도 한유 문장의 규모와 범위를 벗어나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소식이 괴이하다고 하나 그 문장에 서린 기운은 한유 못지않다. 또한 그의 문장은 뜻을 위주로 해 붓 끝에 입이 붙어 있는 듯하다. 그러므로 소식의 글을 좇아 70〜80수를 가려 뽑아 읽고 항상 반복해서 익힌다. 그러면 반드시 많이 읽지 않고도 깨닫는 것이 있을 것이다.

또한 유종원 이하 여섯 대가의 글 중에서 특별히 절묘한 40~50편의 글을 가려 뽑아 여유가 있을 때마다 한 번씩 읽어본다. 그리고 간혹 다시 들추어 읽어 보고 자신의 기호와 취향에 따라 뽑아내어 읽을 만한 문장을 늘리거나 줄인다. 이제까지 말한 내용이 모범이 될 만한 옛 문장의 본줄기다.

글로 자신의 뜻을 전할 때 대부분은 재주가 뛰어난 사람이라 하더라도 학식이 넓지 않다면 변화하는 상황에 맞춰 알맞은 글을 쉽게 지을 수 없다. 또한 글를 지으려면 반드시 옛일과 사건에 관한 지식을 두루 갖추어야 하며 역사를 되돌아보고 살펴 인용하는 데 익숙해야 한다.

따라서 아무리 책을 읽을 시간이 없다고 하더라도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과 같은 역사서는 반드시 처음부터 끝까지 두세 차례에 걸쳐 정신을 가다듬고 집중해서 정독해야만 한다. 그래서 대략적으로라도 역사에서 볼 수 있는 잘 다스려짐과 어지러움, 얻고 잃음의 예를 가슴속에 잘 담아두어야 한다.” 이식, 『택당집(澤堂集)』, ‘글쓰기의 모범(作文模範)’

이식의 말은 글쓰기뿐만 아니라 특히 요즈음 유행하는 ‘인문학 열풍’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에 대한 좋은 길잡이가 될 수 있다. 인문학이야말로 ‘옛것’과 ‘새로운 것’의 충돌과 모순 그리고 균형과 융합이 가장 치열하게 부딪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또한 오늘날 인문학을 배우는 이유 역시 이식의 지적처럼 시대의 변화에 맞춰 새로운 것의 단서와 실마리를 고전과 역사에서 찾아내 참신하고 창의적인 무엇인가를 발견하거나 발명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전과 역사를 공부하되 현대적 의미와 가치로 재해석·재창조할 줄 알아야 하고, 현대적 의미와 가치를 찾되 고전과 역사를 아무렇게나 함부로 배우고 자기 멋대로 해석하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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