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어의 이동이 네덜란드의 황금시대를 열었다?”…『세계사에서 경제를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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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어의 이동이 네덜란드의 황금시대를 열었다?”…『세계사에서 경제를 배우다』
  • 심양우 기자
  • 승인 2015.09.23 08: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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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어를 쓸어담고 있는 암스테르담 사람들.

18세기 네덜란드의 황금시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15~18세기 일어났던 소빙하기를 알아야 한다.

당시 독일 부근에 있던 청어가 네덜란드로 이동하면서 경제적 기반을 마련했고 이른바 ‘황금시대’를 맞이했기 때문이다. ‘암스테르담은 청어의 뼈 위에 건설됐다’는 말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자본주의가 세계적인 경제제도로 자리 잡는 과정을 보기 위해서는 1492년 스페인의 그라나다 점령을 알아야 한다. 이때 15만명의 유대인이 추방되고 추방당한 유대인이 마치 민들레 포자처럼 전 세계로 퍼져나가면서 자본주의 또한 전 세계로 퍼져나갔기 때문이다.

경제는 역사의 큰 줄기를 만들어왔다. 곧 인류의 역사는 경제의 역사인 것이다.

바이킹이 바다를 건너 약탈을 일삼은 것도 경제적인 이유였고, 나폴레옹 전쟁의 발단도 ‘대륙봉쇄령’이라는 경제정책이었다.

경제와 역사의 상관관계를 더 정확히 파악하려면 산업혁명부터 세계사의 흐름을 지켜보면 된다.

영국의 산업혁명으로 시작된 공급과잉은 식민지시대를 열었고 서구 열강이 열광한 제국주의라는 정치·경제체제는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전쟁을 불러왔다. 이후 다시 시작된 공급과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 세계 공업시장이 너도나도 가격을 인하한 탓에 일명 ‘검은 목요일’이라 불리는 대공황을 야기했다.

신간 『세계사에서 경제를 배우다』(살림)는 역사적 사실과 그 뒤에 숨겨진 경제적 사실을 통해 미래를 예측할 시각을 제시한다.

지난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일어났을 때 전 세계는 숨을 죽이고 미국을 지켜봤다.

단순히 경제위기의 여파가 자국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지를 걱정한 것만은 아니었다. 약 100년 전 미국에서 일어난 대공황이 어떤 결과로 이어졌는지를 떠올렸던 것이다.

대공황 당시 내수경기로 대공황에서 탈출한 미국과 달리 유럽은 전쟁을 준비했다. 대공황 외에도 한 국가의 경제문제 해결을 위한 수단으로 전쟁이 탈출구 역할을 하는 사례는 역사 속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물론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트라우마처럼 전쟁을 떠올리게 한 것이다.

이처럼 경제사는 생각보다 꽤 많은 객관적 사실을 제공한다. 과학 실험처럼 역사적 경험 또한 다양한 환경과 공간에서 여러 집단의 피실험자들에게 실행한 정책들과 그 결과가 데이터화돼 있다.

예컨대 보호무역의 이점을 알고 싶다면 대륙봉쇄령 당시 스위스 등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의 사례를 찾아보면 된다. 또한 장기적인 저금리정책의 효과와 폐해가 궁금하다면 1980~1990년대의 일본을 살펴보면 된다.

이를 통해 경제이론도 발전시킬 수 있다. 실제 마르크스나 엥겔스의 경제학을 제외한 대부분의 경제학 이론은 역사적 경험을 바탕으로 발전해왔다.

 

1929년 대공황이 발생했을 때는 그 원인을 찾기 위해 존 케인스와 밀턴 프리드먼이 등장했다. 그리고 대공황은 유효수요를 늘리고 정부가 시장에 개입해야 한다는 케인스학파의 주장을 선택함으로써 벗어날 수 있었다.

자연과학과는 달리 따로 실험을 할 수 없는 경제학에서 역사적 사건은 유일무이한 실험 케이스인 셈이다.

과거 이루어졌던 경제정책과 그로 인한 역사적 사건을 바탕으로 새로운 경제 이론을 발전시킬 수 있다. 그리고 현재 혹은 미래에 일어날 경제적 사건을 예측하고 해결책을 마련할 수 있다는 점에서 경제사의 필요성을 상기할 수 있다.

저자는 서문에서 “오늘 아침 신문에서 읽은 한 줄짜리 경제기사도 경제사의 한 부분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우리의 삶이 경제사와 무관하지 않음을 말해준다”면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어쩌면 역사의 흐름을 바꿔갈 주인공인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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