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산은 사람을 살리는 산”…한반도의 척추 소백산

[이경구 사진작가의 산행일기](51) 비로봉 가는 능선길 연분홍 철쭉 장관

2021-05-25     이경구 사진작가
[사진=이경구]

단양으로 접어들며 차창밖으론 첩첩이 쌓인 산들이 크고 웅장한 깊은 품을 보여준다.

굽이 돌아흐르는 남한강을 내려다 보면서 단양군 가곡면 어의곡 마을에 도착했다. 서울에서 새벽 5시에 차를 몰고 2시간 30분 정도 소요됐다.

두메 마을 어의곡리에는 소백산 천연림의 깊은 골 새밭계곡이 있다. 청정한 계곡수는 유리처럼 맑고 깨끗해 낙차한 물소리가 숲에 울려 퍼지며 메아리친다.

[사진=이경구]

한반도의 척추 부분에 해당하는 소백산(1439m)은 경상도 강원도 충청도의 경계를 지으며 솟아 있는 우리나라 12대 명산중 하나다.

주봉인 비로봉·도솔봉·연화봉·국망봉 등 1000m 넘는 고봉들이 장장 15km에 걸쳐 있으며 장대한 능선은 웅장하면서 유순해 어머니의 품안처럼 아늑하다.

소백산 산행은 목적지나 난이도별로 총 7개의 코스가 있다. 풍기 방향에서는 희방사 코스, 비로사 코스( 삼가리 코스), 초암사 코스(배점리 코스)가 있고 단양 쪽에는 천동 코스, 어의골 코스, 구인사 코스, 죽령 코스 등이 있으며 백두대간 길을 따라 죽령에서 북쪽 고치령까지 종주하는 코스도 있다.

[사진=이경구]

큰 산에 수월한 산행코스는 없겠지만 청정계곡을 타고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호젓한 산길을 올라 소백산의 넉넉한 품속으로 들어가는 어의곡 코스를 택했다. 어의곡탐방지원센터→어의곡삼거리→비로봉까지 편도 4.6km 약 2시간40분이 소요되며 정상인 비로봉까지 이르는 가장 짧은 코스다.

주차장에서 10분 거리에 어의곡탐방센터를 지나 계곡을 따라 들면서 심산유곡의 기운이 느끼며 서서히 고도를 높인다. 오름길 왼편의 계곡엔 바위를 덮고 있는 푸른 이끼가 피어나 원시의 비경과 마주한다.

산길은 좁아지며 돌부리가 연신 박혀있는 너덜길이다. 산행 시작 40분 만에 첫 번째 이정표를 만나면 비로봉이 3.6km 남는다.

[사진=이경구]

쭉쭉 뻗어 있는 울창한 잣나무와 낙엽송 숲을 지난다. 잣나무의 싸한 솔향과 연한 바늘잎도 싱그럽다. 얼마 가지 않아 촘촘한 돌계단을 만나 가풀막을 오르며 또 다른 데크계단길이 끝없이 이어진다.

데크계단길이 끝나고 완만한 오르막 흙길로 접어들어 해발 1200m에 올라선다. 주차장에서 3.6km 지점에서 두 번째 이정목을 지나자 비로봉 정상까지는 1.5km를 알려준다.

[사진=이경구]

하얀 자작나무 군락지를 지나며 초록의 피톤치드가 코끝에 닿는 듯 상쾌한 기분으로 숲길을 지나면 탄성이 절로나는 초록의 초원과 마주한다. 넓은 시야와 개방감이 뛰어나 아득히 먼 산은 하늘 아래까지 솟아 있고, 산세는 부드럽고 온화하다.

일찍이 조선 초기의 학자 서거정(徐居正)은 소백산을 한번이라도 찾은 사람은 영원히 소백산의 환영을 떨쳐버릴 수가 없을 것이라 했고 조선 명종때 풍수지리학자인 격암 남사고(南師古)는 소백산을 보고 말에서 내려 넙죽 절을 하면서 “이 산은 사람을 살리는 산이다”고 말했다고 한다.

[사진=이경구]

사방으로 시야가 트인 비로봉으로 가는 능선길엔 연분홍 철쭉이 척박한 고산에 피어 장관이다. 해발 1000m 이상의 산간에서 보는 꽃빛이 눈부시게 아름다워 한국의 3대 철쭉 명산이란 명성답게 천상의 화원이 펼쳐진다. 소백산 봄 산행의 백미이며 마지막 봄의 대미를 장식하고 있는 듯 하다.

철쭉나무 외에는 나무가 없는 목책 능선길을 따라 내려가면 어의곡주차장에서 4.2km 지점에 국망봉으로 갈라지는 어의곡삼거리에 닿고 정상이 400m 남는다.

[사진=이경구]

이윽고 넓은 정상에 서게 된다. 잘생긴 비로봉(1439m) 정상석을 반갑게 안아본다. 사방이 눈 아래로 보이고 창공에 몸이 두둥실 떠 있는 것만 같다.

백두대간 마루금이 겹겹이 일렁이며 시야에 들어오는 넉넉한 산세와 남쪽방향으로 연화봉 죽령 넘어 도솔봉으로 이어지는 소백산맥이 펼쳐지는 장엄한 풍경에 압도되며 가슴 속이 후련하다.

바로봉 주변에는 빽빽한 주목나무 숲이 있다. 철쭉과 사이좋게 어울어져 한폭의 수채화 같은 풍경을 만들어낸다.

[사진=이경구]

정상 표지석 뒷면에 조선 초기의 대문호 서거정의 ‘소백산’이란 한시가 새겨져 산의 절경과 풍치를 말해주고 있다.

태백산에 이어진 소백산
백 리에 구불구불 구름 사이 솟았네
뚜렷이 동남의 경계를 그어
하늘 땅이 만든 형국 억척일세

몇 컷의 풍경사진을 담고 간단한 산정에서 점심식사 후 충분한 휴식을 취한 다음 하산길에 들어섰다. 차를 세워둔 어의곡 주차장으로 되돌아가야 하는 지루함이 있지만 묵묵이 걷는 수밖에 없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어의곡이 가까워질 무렵 찬 계곡수에 지친 발을 담구어 피로를 녹인다.

[사진=이경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