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도 마음도 부산한 가운데 오월이 가고 연중 허릿달 유월이다. 하루 휴일이 주어지고 또 역마살이 도져 뚝뚝 잘린 김밥 한 줄 배낭에 넣어 둘러매고 산행에 나섰다.
차창 밖 논에는 어린 모가 파릇파릇 채워져 있고 좁은 논둑길 너머엔 하얀 개망초가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어릴 적 이맘때쯤이면 마을 주름진 다랭이논에 못줄을 대며 모내기에 정신이 없었고 나무 그늘 드리워진 곳에 앉아 땀을 훔쳐내며 먹던 새참을 잊을 수가 없다. 애호박 고소하게 볶아 쪽파 송송 썰어 만든 양념장으로 간을 맞춰 후르륵 몇 번 하면 큰 대접의 국수를 순식간에 비우고 희뿌연 막걸리 한사발에 기분 좋게 일하던 모습이 아련하다.
양은 주전자에 막걸리를 사 나르고 논둑에서 못줄을 대며 바쁜 일손을 보탰던 추억은 이제 아련한 옛일일 뿐이다.
충남 홍성군과 예산군에 걸쳐있는 용봉산(381m) 들머리에 도착했다. 용봉산은 381m 높지 않은 바위산이다. 단신이지만 수려한 기암들이 능선 여기저기 울퉁불퉁 솟아 있고 구불구불한 소나무 군락이 산길을 열어주어 산행 내내 지루함 틈이 없어 인기가 많은 산이다.
등산코스는 휴양림관리소-최영장군활터-최고봉(정상)-노적봉-악귀봉-마애석불-용봉사-구룡대매표소-휴양림관리소 코스로 총 3km 2시간30분이 예상된다. 짧은 산행이 아쉬운 등산객들은 용바위 삼거리에서 수암산(260m)으로 연계해 산행을 이어간다.
주차장은 무료로 깔끔하게 관리되어 있고 1000원의 탐방 입장료가 있다.
들머리 진입 이정목에는 최영장군활터까지 0.5km가 표기돼 거리와 방향을 잡아준다. 제법 가파른 바윗길로 약 10분 남짓 오르면 충남도청과 내포신도시 너어로 너른 평야가 펼쳐진다. 바위와 돌들이 길을 덮고 있으며 초여름 뜨거워지기 시작하는 햇볕 아래 무성한 나뭇잎은 넘치는 힘으로 원색의 풀풀함이 넘쳐난다.
벌써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힌다. 암릉길을 오르다가 자라바위와 육중한 흔들바위가 자리 잡고 있다. 암벽을 타고 좀 더 오르면 최영 장군이 어린 시절 활을 쏘며 무예를 연마한 활터가 나온다.
팔각정 정자가 있어 잠시 쉬어가며 사방을 바라보는 전망이 좋다. 이곳에서는 왼편으로 노적봉, 오른편으로는 병풍바위를 조망할 수 있다. 300m 약 15분 더 오르면 정상인 최고봉이다.
산행 시작 한 시간도 되지 않아 정상에 서면 왜 용봉산이 충남의 소금강이라 불리는지 고개가 끄떡여진다. 충남도청 주변으로 내포신도시 아파트가 오밀조밀하고 아파트 뒤쪽으로는 삽교천 유역의 예당평야가 시원하게 펼쳐진 풍경은 해발 381m 정상의 조망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놀랍다.
노적봉으로 발길을 옮긴다. 바윗길이 연속이지만 데크가 설치돼 그리 위험하지는 않다. 바위틈을 비집고 자란 소나무와 기기묘묘한 바위 군락에 탄성을 금할 수 없다.
노적봉에서 악귀봉 방향으로 내려서는 바위길 옆에는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른 촛대바위와
행운바위가 자연 예술품이 되어 반겨주며 행운바위 상단에는 산객들이 행운을 빌며 던진 작은 돌이 수북하다.
조심스레 안부로 내려섰다가 다시 오르면 봉우리 전체가 울퉁불퉁한 바위로 된 악귀봉이다.
서해의 낙조가 일품인 악귀봉 낙조대는 용봉산에서 가장 풍경이 멋진 곳이다. 서산의 가야산, 예산 수덕사의 덕숭산, 예당평야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
악귀봉에서 완만한 능선길을 따라 내려서면 임간휴게소라 불리는 고갯마루 삼거리다. 여기서 용봉사로 내려설 수 있고 용바위와 병풍바위를 거쳐가도 된다. 평상이 많이 설치돼 있어 잠시 쉬어 가기에 딱 좋은 지점이다.
하산은 용봉사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내려가는 길에는 마애여래입상이 있다. 고려초기에 조각한 석조 부처님은 잔잔한 미소와 온화한 모습이다.
마애불을 지나 조금 내려서면 용봉사 가람이 보이고 여기에서 잘 포장된 길이 구룡대 매표소까지 이어지며 산행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