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바람과 밝은 달, 청풍명월의 본향 월악산(1097m)으로 향한다. 이번 산행은 친구들과 동행하게 돼 한결 편안하고 여유롭다.
동서남북 크고 높은 산군을 거느린 명산 월악산은 백두대간 중심부에 위치한 산으로 소백산맥에 속해 있으며 주봉인 영봉과 금수산·대미산·제비봉·옥순봉·구담봉·문수봉 등 20개가 넘는 산들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돼 있다.
고속도로 충주 나들목을 빠져나와 충주호반 가장자리 차도를 따라 꼬불꼬불 깊숙이 들어가면 월악산을 오르는 마을 제천시 덕산면 수산리에 도착한다. 수산리에서 밭 사이로 난 가풀막 포장도로를 따라오르면 작고 정갈한 느낌을 주는 보덕암이 아늑하게 자리하고 있다.
이곳 보덕암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보덕암에서 출발해 하봉·중봉을 거쳐 영봉에 올랐다가 원점회기할 예정이다. 주차장에서 정상 영봉까지는 편도 4.1km다.
월악산 등산은 덕주사 코스, 신륵사 코스, 동창교 코스, 보덕암 코스 등 크게 4개 코스가 있으며 어느 방향에서 올라도 급경사의 데크 계단을 오르내려 가쁜 숨을 헐떡여야 한다. ‘악’산의 진면모, 그 실체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산길이다.
주차장 우측으로 깨끗한 화장실 앞을 지나면 등산로 초입부터 가파른 계단길이 기다린다. 계단길을 20여분 올라가면 이정표엔 영봉 3.5km를 가리키고 층층바위를 지나 25분 정도 가면 휘어진 길에 아름드리 소나무가 군락을 이루며 시야를 압도한다.
가파른 철계단과 돌길을 치고 오르길 1시간20분 만에 하봉근처 전망대에 도착했다. 산과 산 사이를 가득 채운 충주호의 그림 같은 풍광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체증이 한순간에 씻겨 내려가는 듯 가슴속이 후련해 온다.
전망대를 뒤로하고 발길을 옮기면 협곡에 걸쳐진 구름다리가 놓여있고 전면 시야에는 가야 할 하봉·중봉·영봉의 거대한 고봉준령이 펼쳐진다. 중원의 맹주다운 기세다. 험한 암벽 위로 놓여있는 계단의 경사도가 급해 금방이라도 쏟아질 듯 아찔하다.
예전엔 우회해 지나쳤다던 하봉, 그 험한 암벽 위로 계단이 놓여 3봉우리 중 첫 번째 하봉에 올랐다. 하봉의 조망 또한 일망무제로 남한강과 충주호의 푸른 물줄기가 시원하고 평화롭다. 이 험한 바위틈에서도 뿌리를 박고 푸른 삶을 사는 소나무는 산객의 말문을 막는다.
발길을 재촉해 중봉으로 향한다. 하봉에서 중봉까지는 지척이지만 너덜길과 오금이 저리도록 아찔한 구름다리와 계단을 지나야 한다. 중봉으로 오르는 철계단 아래엔 절벽 틈새 위에 거대한 바위가 걸린 석문바위의 비경이 나타나고 가파른 철계단을 밟고 중봉 전망대에 올라서면 충주호를 에워싼 산그리메가 선계를 방불케 한다. 보덕암을 출발한 지 2시간이 소요됐다.
중봉 전망대에서 간식과 충분한 휴식을 취한 후 다시 정상 영봉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초여름의 능선길에서는 후끈한 흙냄새를 토하며 풋풋한 녹음의 물결이 넘실거린다.
중봉에서 가파른 경사길을 10여분 내려가면 안부에 이르고 다시 영봉을 오르는 오르막이 시작된다. 거친 숨소리를 내뱉으며 발걸음도 더뎌진다. 이정표가 영봉 0.3km를 가리킨다. 보덕암에서 3.7km 오른 지점이다.
전면에는 코가 닿을 듯한 계단이다. 경사가 급하고 높아 고소공포증이 생길 것 같은 아찔한 벼랑길이다. 이윽고 고된 산행 끝에 고스락 영봉에 선다. 다리가 후들거리며 숨이 턱에 차지만 월악산은 보상이라도 하듯 수려한 풍광을 내놓는다.
천혜의 비경이다. 유려한 남한강과 충주호는 맵도록 푸르다. 충주호 너머로 멀리 소백산·주흘산·만수봉·포함산 등 높고 낮은 산들이 하늘 금을 이루고 지나온 중봉·하봉 아래 충주호의 모습은 산행의 감동을 듬뿍 받기에 충분하다.
보름달처럼 둥근 정상석에서 기념사진 한 컷 남기고 조촐한 점심식사를 마친 후에도 사방으로 물결치듯 이어진 산그리메를 한참이나 조망하고 다시 걷기를 시작한다.
까마득한 하산길 지옥계단 어찌 내려갈까 부담이 있지만 걷다가 쉬고 쉬다가 걸으며 월악의 품을 빠져나왔다.
중원의 신성한 월악산 영봉에서 싱싱한 신록 아래로 깊고 푸른 충주호의 물굽이, 선 굵은 백두대간의 산물결은 오랫동안 기억에 간직될 풍경화로 지워지지 않을 산행이다.
하산 후 친구가 소개한 괴산군 괴강 쏘가리 매운탕은 일품이다. 깨끗한 괴강에서 잡은 쏘가리는 살이 여물었고 걸쭉 묵직한 탕엔 감자를 넣어 담백하며 듬성듬성 떠 넣은 수제비도 명불허전이다.
산행일정을 모두 마무리한다. 묵묵한 발걸음과 맛있는 입놀림까지 동행해준 편한 친구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