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8월부터 자산 2조원 이상 대기업은 여성 사외이사를 사실상 1명 이상 두는 것이 의무화되면서 최근 재계는 여성 사외이사를 모시려는 영입 열풍으로 한창이다.
특히 올해는 ‘여성이면서 교수 출신의 1960년 이후 출생자’를 지칭하는 ‘여교육(女敎六)’으로 함축되는 이들이 국내 대기업 사외이사 영입 1순위다.
지난해 3분기 기준 국내 매출 상위 100곳 중 70곳은 여성 사외이사가 단 한 명도 없었다. 또 100대 기업 이사회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아직 5% 정도에 불과하지만 내년에는 20% 정도까지 크게 상승할 것으로 관측됐다.
24일 글로벌 헤드헌팅 전문업체 유니코써치에 따르면 국내 100대 기업 사외이사 숫자는 441명으로 집계됐다.
성별로는 여성이 35명(7.9%)에 그친 반면 남성은 406명(92.1%)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100대 기업 내 사외이사 중 여성은 열 명 중 한 명꼴도 되지 않았다.
여성 사외이사가 단 한 명이라도 있는 곳은 30곳으로 집계됐다. 70개 기업은 여성 사외이사가 전무했다. 아직까지 국내 대기업에서 사외이사를 영입할 때 남성을 선호하는 경향이 팽배하다는 의미다.
여성 사외이사가 있는 30곳 중에서도 여성이 2명 이상인 곳은 단 4곳밖에 되지 않았다.
지역난방공사는 100대 기업 중 여성 사외이사가 가장 많았다. 사외이사 숫자는 총 6명으로, 이중 50%인 3명이 여성으로 채워졌다. 이어 삼성전자, 한국전력(한전), 에쓰-오일도 여성 사외이사가 각 2명씩이었다. 특히 삼성전자와 에쓰-오일은 사외이사 6명 중 2명(33.3%), 한전은 8명 중 2명(25%)이 여성이었다.
출생년도별로는 1955년생이 34명으로 가장 많았다. 5년 단위별로 보더라도 1955~1959년 출생자가 128명(29%)로 최다였다. 1960~1964년생은 120명(27.2%), 1950~1954년생 74명(16.8%), 1965~1969년 53명(12%) 순이었다. 1970~1980년대 태어난 사외이사는 35명(7.9%)으로 1950년 이전 출생자 31명(7%)보다 많았다.
조사대상자 중에는 1980년대 출생한 사외이사도 두 명이었다. 한전 방수란 비상임이사는 1987년생으로 100대 기업 사외이사 중 최연소였다. 정기보고서에 따르면 방 이사는 이화여대 법학과를 나와 서울에너지공사 고문변호사로도 활약 중인 것으로 명시됐다. 방 이사의 임기는 내년 8월까지다.
또 다른 1980년대생은 지역난방공사 정이수 사외이사다. 1982년생인 정 이사는 한양대 법학과와 영남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사 출신으로 현재 정이수법률사무소 변호사이자 의정부지방법원 파산관재인 등을 맡고 있다.
100대 기업 사외이사들의 학력 등을 살펴보면 박사급만 197명으로 44.7%에 달했다. 사외이사 둘 중 한 명은 박사학위를 취득할 정도로 각 분야의 전문가들로 포진돼 있는 셈이다.
또 소위 명문대로 지칭되는 SKY(서울·고려·연세대) 학부 출신 사외이사도 165명(37.4%)이나 됐다. 이 중에서도 서울대 출신이 106명이었다. 대기업 사외이사 그룹에서도 서울대 출신을 선호하는 쏠림 현상이 뚜렷했다.
사외이사들의 핵심 경력으로는 대학총장과 교수 등 학계 출신이 184명(41.7%)으로 주류를 이뤘다. 100대 기업 사외이사 10명 중 4명은 대학교수 출신으로 채워질 정도로 전문성이 높은 학자들을 영입하는 경우가 두드러졌다.
이어 CEO 등 재계 출신 99명(22.4%), 국세청·금융감독원원·공정거래위원회·관세청·감사원·지자체 공무원 등 행정계 출신이 84명(19%)으로 많았다. 판사·검사·변호사 등 법조계 출신은 54명(12.2%)으로 조사됐다.
조사대상자 중에서는 장·차관급 이상 고위공직자 출신도 30명이나 됐다. 또 장·차관급 이상 고위공직자를 제외하고 국세청, 공정위, 금감원 세 기관에서 공직생활을 했던 이들 중에서도 25명 정도가 현재 사외이사로 활동하고 있었다.
조사대상 441명 중 155명(35.1%) 이상은 올 3월 말 이전 임기만료를 앞두고 있다. 내년에도 올해와 비슷한 150명 정도가 사외이사 임기만료 예정이다. 올해와 내년 사이 300명 정도의 사외이사 자리에 변동이 발생하게 된다.
이번에 조사된 100대 기업 내 여성 사외이사 35명을 살펴보면 1960년대 출생자는 21명으로 60%를 차지했고 1970~1980년대생은 9명(25.7%)이었다. 1960년 이후 출생자가 85%를 넘어섰다. 교수 이력을 가진 학자 출신도 20명(57.1%)으로 많았다.
이 같은 흐름이 이어질 경우 올해 신규 선임되는 여성 사외이사 중에는 1960년 이후 출생한 대학교수 중에서 이사회로 진출할 확률이 매우 높을 것으로 관측됐다.
유니코써치 측은 학자 출신의 교수들은 상대적으로 해당 분야 전문성이 높기 때문에 기업들은 이들 그룹에서 사외이사 후보군을 찾으려는 경향이 높다고 설명했다.
실제 기아가 다음달 주주총회에서 신규 승인할 조화순 사외이사 역시 1966년생으로 현재 연세대 교수로 활동 중이다. 현대모비스에서 새로 선임한 강진아 사외이사도 1967년생으로 서울대학교 협동과정 기술경영경제정책대학원 교수직을 맡고 있다. 현대차도 현재 카이스트 교수 타이틀을 가진 1974년생 이지윤 사외이사를 선임했다. 이는 다른 기업들도 비슷한 경향을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범위를 넓혀 지난해 3분기 기준 국내 100대 기업에서 사내이사와 사외이사를 포함한 총 이사회 인원은 모두 756명으로 집계됐다. 이중 여성은 사외이사 숫자보다 겨우 4명 더 많은 39명으로 여성의 이사회 진출 비율은 5.2%에 그쳤다. 세계 선진국과 비교하면 아직 갈 길이 먼 수준이다.
미국 뉴욕 증시에 상장된 대기업 500개사로 구성된 S&P500 지수에 들어가는 회사들의 여성 이사회 진출 비율은 지난해 기준 28% 수준이다. 스웨덴(24.9%), 영국 (24.5%)도 이사회에서 여성 비율은 20%대로 우리나라 기업들보다 높은 편이다. 덴마크와 노르웨이 등 유럽 선진국은 법률 등에 여성 이사 비율을 40%까지 확대해 놓았다. 최근 독일도 3명 이상의 이사회를 가진 상장 회사의 경우 1명 이상의 여성 이사를 두는 방안에 합의했다. 이사회 멤버 중 30% 이상을 여성 몫으로 할당해놓은 셈이다.
우리나라도 올해와 내년 사이 여성 이사회 진출 비율 수치가 크게 달라질 것이 확실시된다. 자산 2조원이 넘는 곳은 내년 8월부터 이사회에서 최소 1명 이상의 여성 이사를 두도록 의무화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내년쯤 150명 내외 수준의 여성들이 이사회로 진출할 가능성이 높아 국내 100대 기업 기준 이사회 내 여성 비율은 20% 수준으로 높아질 것으로 유니코써치 측은 관측했다.
지난해 3분기 기준 우리나라 100대 기업 중 이사회에서 여성 비율이 20%를 넘는 곳은 단 두 곳밖에 없다. 지난해 3분기 기준 이사회 멤버가 총 7명인 삼성카드는 사내이사(이인재 부사장)와 사외이사(임혜란 이사)로 각각 1명씩의 여성을 선임해 28.6% 비율로 100대 기업 중 최고였다. 지역난방공사는 27.3%로 두 번째로 높았다. 이외 여성 이사회 비율이 10%대 인 곳은 27곳이었다.
유니코써치 김혜양 대표는 “세계적으로 ESG가 새로운 경영 화두로 떠오르고 있고 선진국을 중심으로 이사회 멤버 중 여성 비율을 높이는 분위기가 강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남성 중심의 이사회가 이어지다보니 자발적으로 여성 사외이사를 확대해온 기업은 많지 않은 게 현실”이라며 “여성 사외이사의 증가는 기업의 지배구조인 거버넌스를 투명하게 하고 이사회 조직 운영의 다양성을 강조하는 세계적인 추세에 발맞추기 위한 행보의 일환으로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으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