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에 버릴 물건은 없고 버릴 재주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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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에 버릴 물건은 없고 버릴 재주도 없다”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6.04.01 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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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철학]⑥차이와 다양성의 미학…모든 글은 나름의 묘미를 갖고 있다⑥
 

[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철학]⑥차이와 다양성의 미학…모든 글은 나름의 묘미를 갖고 있다⑥

[한정주=역사평론가] 정조의 문체 반정을 반박하면서까지 차이와 다양성을 옹호한 박제가의 글쓰기 철학은 이전 시대의 현달한 문인들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자면 조선의 명문장만을 가려 뽑아 엮은 『속동문선(續東文選)』에 실려 있는 조선 전기(성종과 연산군 연간)의 문인 매계(梅溪) 조위의 ‘규정기(葵亭記)’를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다.

조위는 해바라기를 빌어 자신이 거처할 정자의 이름을 ‘규정(葵亭)’이라고 지었다. 그러자 어떤 사람이 군자를 표상하는 고상하고 우아한 소나무, 대나무, 매화, 난초 등을 취해 이름을 짓지 않고 왜 하필이면 ‘식물 중에서도 미약하고도 가장 비천한 것’인 해바라기를 취하느냐고 묻는다.

이에 대해 조위는 이렇게 대답한다. “천하에는 버릴 물건이 없고 버릴 재주도 없다”라고.

그러면서 어찌 소나무와 대나무와 매화와 국화와 난초만을 귀한 것이라고 하겠느냐고 반문한다. 세상의 온갖 사물은 그 생김새와 쓰임새가 다를 뿐 어떤 것은 귀(貴)하고, 어떤 것은 천(踐)하다고 말할 수 없다는 통쾌한 반론이다.

사람의 재주 또한 그것이 언제 어느 곳에서 어떻게 사용되는가에 따라 달라질 뿐 어떤 것은 취해야 할 재주이고, 어떤 것은 버려야 할 재주라고 말할 수 없다. 사람과 사물을 포함한 세상의 모든 것을 귀천(貴賤)과 경중(輕重)과 우열(愚劣)의 관계가 아닌 차이와 다양성의 관계로 보는 탁월한 식견이 아닐 수 없다.

“내가 용만에 귀양살이하던 그 다음해 여름에 들어있는 집이 좁아 덥고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여 곧 취원(就園) 중에 높고 상쾌한 곳을 골라 정자 몇 칸을 세워 따로 이엉을 하였는데, 대여섯 명이 앉을 수 있으나 곁집이 즐비하여 약간의 빈터도 없고 취원도 겨우 한 길 남짓하였다.

다만 해바라기 몇 십 그루가 있어 푸른 줄기와 고운 잎이 훈풍에 움직일 뿐이었으므로 이내 이름을 규정(葵亭)이라 하였는데, 어떤 손님이 나에게 물었다.

‘대체 해바라기는 식물 중에 미약한 것이 아닌가. 옛 사람이 초목과 꽃에 비하여 그 특별한 풍치를 취하였는데 대부분 소나무, 대나무, 매화, 난초, 혜(蕙) 등으로 그 집을 이름 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미약한 이름으로 지었다는 말은 듣지 못하였으니, 그대는 이 해바라기에 대하여 무엇을 취했던가. 혹시 이에 대한 이론이 있는가?’

그래서 나는 말했다. ‘대체 물건이 같지 않음은 물건의 심정이다. 귀천(貴賤)과 경중(輕重)이 갖가지로 같지 않으니 대체 해바라기는 식물 중에서 미약하고도 가장 천한 것으로서 사람에 비한다면 야비하고 변변하지 못한 최하품이고 소나무와 대나무와 매화와 국화와 난과 혜(蕙)는 식물 중에서 굳세고 풍치가 있고 또 향기가 있는 것으로서 사람에 비한다면 우뚝하게 뛰어나 세상에 독립하여 그 성명과 덕망이 울연한 자가 아니겠는가.

내 이제 거칠고 멀고 적막한 곳에 쫓겨나서 사람들이 천시하고 물건 역시 성기게 대하는 터이니 나의 정자를 솔과 대와 매화와 국화와 난과 혜로 이름 하고자 한들 어찌 물건에 부끄럽고 사람들에게 웃음거리가 되지 않겠는가. 버림받은 사람으로서 천한 물건에 부합하되 멀리 구하지 않고 가까운 데서 구하는 것이 나의 뜻이오.

또 나는 들으니 천하에는 버릴 물건이 없고 버릴 재주도 없으므로 저 어저귀나 살바귀나 무나 배추의 미물이라도 옛 사람이 모두 버릴 수 없다 하였거늘 하물며 해바라기는 두 가지의 덕이 있음에랴.

해바라기는 능히 햇빛을 향하여 빛을 따라 기울고 하니 이를 충성이라 일러도 가할 것이요, 해바라기는 능히 밭을 보호하니 이를 슬기라 일러도 가할 것이다. 대체 충성과 슬기란 사람의 신하된 절개이니 충성으로 윗사람을 섬기되 자기의 정성을 다하고, 슬기로서 물건을 변별하여도 시비에 의혹이 없는 것이니, 이것이 곧 군자의 어려워하는 바요, 나의 일찍부터 연모하던 일이라.

이 두 가지의 아름다움이 있음에도 어찌 미약한 푸새라 하여 천하게 여길 수 있겠는가. 이로써 논한다면 다만 솔과 대와 매화와 국화와 난과 혜라야 가히 귀하지 않음이 분명하지 않겠는가.

이제 내 비록 귀양살이를 한다 하더라도 자는 것이나 먹는 것이 임금의 은혜 아님이 없으니 낮잠과 밥 먹는 나머지에 심휴문(중국 양나라 무강 사람)과 사마군실(중국 북송 때의 학자)의 시를 읊을 때마다 해를 향하는 마음이 스스로 말지 못하였으니 해바라기로 내 정자의 이름을 지은 것이 어찌 아무런 이론이 없다 이르겠는가.’

손님은 말하기를 ‘나는 한 가지만 알고 그 두 가지는 몰랐더니 그대 정자의 뜻을 듣고 보니, 더할 나위가 없구려’하고는 웃으면서 가버렸다.” 조위, 『속동문선』, ‘규정기’ (조위 지음, 손광성 옮김,《아름다운 우리 고전 수필》, 을유문화사, 2003.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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